엄지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의 끝을 둥글게 모아 보자. 자두 하나 들어갈 정도의 둥근 원이 생길 것이다. 지름 4센티미터의 골프공 크기이다. 이번에는 주먹을 쥐어보자. 이와 같은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바로 골프에서 말하는 ‘홀’의 크기이다. 자두만큼 작은 공을 채로 쳐서 주먹만큼 작은 구멍에 집어넣는 경기가 바로 골프이다. 7~8킬로미터의 코스를 돌며 18개의 홀에 공을 넣으며, 소요된 타수의 많고 적음으로 우열을 가린다. 한때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다. 시각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팀플레이’다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재미로 골프를 치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요. 골프는 시각장애인에게 정말 좋은 운동이에요. 장애물 걱정 없이 잔디 위를 마음껏 걸을 수 있는 운동은 골프가 유일하지 않을까요?”

  한국시각장애인골프협회 유정일(43) 회장의 말이다. 2007년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래 현재 50여 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안마사, 사회복지사,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 등 하는 일과 성별, 나이는 저마다 다르지만, 골프에 대한 열망만은 하나다.

  “시각장애인 골프에는 보조자가 필요해요. 드넓은 필드에서 조그마한 홀의 위치를 가늠하는 일은 시각장애인에게 어려운 일이니까요.”

  시각장애인 골퍼가 자세를 취하고 연습 스윙을 하면 보조자가 클럽(골프채)의 머리 부분을 공 뒤에 놓아 방향을 헤아릴 수 있게 돕는다. 또한 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경사도는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준다. 물론 이후 공을 치는 것은 온전히 골퍼의 몫이다. 골프에서는 특히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에 초보 골퍼는 강사의 몸을 손으로 만져가며 정확한 자세와 동작을 익힌다.

  한국시각장애인골프협회의 로고는 이러한 시각장애인 골프의 특징을 잘 형상화하였다. 골프채를 잡고 서 있는 한 사람과, 무릎을 세우고 앉아 골프채를 손으로 잡아 방향을 일러주는 또 한 사람. 시각장애인 골프는 애초에 시각장애인 골퍼와 그를 안내하는 보조자의 호흡이 중요한 ‘팀플레이’다.

  조금 다른 벙커(bunker) 규정

  시각장애인 골프는 1925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타이어 폭발 사고로 실명한 클린트 러쎌 씨가 골프를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시각장애인 몇 명이 일본의 시각장애 기업인인 미쯔자와 씨의 후원으로 골프 지도를 받은 것이 최초다. 이후 2007년 1월에 칼럼니스트이자 기업인인 김덕상 씨를 주축으로 하여 여덟아홉 명이 공식적인 골프 모임을 가졌다. 우리나라에 시각장애인 골프가 도입된 지 10년도 안 되었지만, 세계 무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등 역사를 써나가는 중이다.

  “지난 2008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세계시각장애인골프대회에서 조인찬 씨가 우승을 했고, 같은해 세계시각장애인골프협회에 열다섯 번째 정회원국으로 가입했습니다.”

  시각장애인 골프는 경기 규칙 면에서 정안인 골프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벙커’에서의 규정은 조금 다르다.

  “잔디가 아닌 모래가 있는 우묵한 곳을 벙커라고 하는데요. 정안인 골프에서는 벙커에 공이 빠져도 골프채를 지면에 댈 수 없어요. 만약 지면에 댈 경우 2벌타를 부여하죠. 하지만 시각장애인 골프에서는 벙커에서도 골프채를 지면에 놓고 칠 수 있어요.”

  대부분의 시각장애인 스포츠가 그렇듯 골프 역시 ‘전맹부’ ‘약시부’ 등으로 나뉜다. 전맹 골퍼들은 빛을 완전히 차단한 동일한 조건에서 경기를 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한편 저시력 장애인 중 색상 구분이 어려운 선수는 눈에 잘 띄는 노란색 공으로 경기를 한다. 또한 시각장애 정도에 따라 이른바 핸디캡(handicap)을 적용한다. 여기서 ‘핸디캡’이란 실력이 다른 선수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으로, 전맹 골퍼들은 약시 골퍼들에 비해 50타 정도, 이를 테면 기본 점수를 받는다. 여성도 핸디캡을 적용한다. 이와 같은 규칙으로 경기를 치르고 나면 전맹 회원은 약 120타, 약시 회원은 약 80타의 성적을 기록한다. 대단한 실력들이다.

  골프의 달인 되는 법

  유정일 회장은 골프를 배우는 데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일주일에 3회 이상 연습을 했을 경우라고 한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필드에 나가도 될 정도의 실력을 갖출 수 있다.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축구도 하고, 골볼도 하고, 야구도 하고, 이것저것 많이 해봤는데 골프만큼 까다로운 운동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도전정신을 자극하죠. 끝이 없는 게 골프고, 그게 골프의 매력이에요.”

  하물며 ‘골프의 황제’라 일컬어지는 타이거 우즈도 티칭 프로(골프 레슨 강사)에게 자세를 교정 받는다고 하니, ‘꾸준한 연습’은 골퍼의 평생 숙제인가 보다.

  “골프를 하다 보면 자기 고집 생겨요. 강사가 가르쳐 주는 대로 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하려는 거죠. 하지만 저는 강사가 이끄는 데로 해보는 걸 권하고 싶어요. 더 많은 발전이 있을 거예요.”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골프 역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육체적인 싸움’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싸움’도  중요하다.

  “공이 잘못 맞았다고 화를 내면 경기가 더 안 풀리죠. 골프에서는 항상 정신이 중요합니다. 저는 성격이 급한 편이었는데, 골프를 시작한 뒤로는 느긋해졌어요.”

  장애인 체육 저변 확대를 꿈꾸며

  골프에 대한 선입견 중 하나는 골프가 귀족 스포츠라는 생각이다. 물론 골프채 등 장비를 마련하는 데에는 비용이 꽤 들어가지만, 일단 장비를 갖추고 나면 이후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현재 포천에 위치한 한 골프 클럽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필드를 열어주고 있어요. 매주 월요일 마지막 시간대에 가서 9홀 정도를 도는데요. 무료로 개방을 해주기 때문에 우리로선 정말 저렴하게 골프를 즐기는 거죠. 하지만 장비 정도는 스스로 갖춰야 해요. 장애인이라고 누가 해주기만을 바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자기 비용을 투자해서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고요.”

  유정일 회장은 시각장애인에게 개방된 골프장이 많지 않음을 안타까워했다. 장애인은 경기 진행이 느리다는 편견으로 무조건 반대부터 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한국시각장애인골프협회의 회원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시각장애인에게 개방된 연습장과 골프장이 수도권에 있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에서 시각장애인에게 개방된 골프장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2016년에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는데요. 올림픽에 참가해서 우리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어요. 또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도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을 위해 노력 중이고요. 장애인도 마음껏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세상 만들기에 모두 동참해 주실 거죠?”

  남궁소담 기자